이영하 시인 (前 레바논 대사,공군예비역중장)
제목: 부활절 아침,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
새벽빛이 아직
완전히 밝아오지 않은 시간
나는 오늘 조용히 무릎을 꿇습니다.
부활의 아침이라 하지만
지구의 많은 곳에서는
아직도 어둠이 먼저 깨어나고 있습니다.
주님!
총성이 잠든 자리를 대신해
새의 노래가 흐르게 하시고
폭발의 연기 위로
맑은 하늘이 다시 열리게 하소서.
호르무즈의 파도는
밤새 울고 있었습니다.
그 울음이 바람을 타고
이곳까지 들려옵니다.
주님!
그 바다를 먼저 어루만져 주십시오.
인간의 욕망이 남긴 검은 흔적들을
당신의 빛으로 조용히 씻어 주십시오.
미움이 미움을 낳는 그 끝없는 사슬을
오늘 이 아침부터 끊어 주십시오.
한 사람의 결단이 아니라
모든 이의 양심이
평화를 선택하게 하시고
칼을 내려놓는 손마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체온이 돌아오게 하소서.
주님!
우리는 너무 오래
서로를 의심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서로를 지켜주는 존재임을
다시 배우게 하소서.
부활이 죽음을 이기듯
사랑이 미움을 이기게 하시고
용서가 분노를 넘어서게 하시며
평화가 전쟁을 덮게 하소서.
오늘 이 아침의 기도가
먼 사막의 하늘에 닿아
총성이 멈춘 자리마다
아이들의 웃음이 돌아오고
눈물의 강이 흐르던 곳마다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따뜻한 목소리가 피어나게 하소서.
주님!
이 작은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두려움 속에 서 있는 이들에게
한 줄기 평안을 내려 주시고
지구 위에 다시 사람의 길이 열리게 하소서.
그래서 언젠가 호르무즈의 파도도
더 이상 울지 않고 햇살을 흔들며
평화의 이름으로
조용히 숨 쉬게 하소서.
아멘!!!
이영하 시인의 ‘부활절 아침,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 의 감상 평론...
전 레바논 대사이자 공군 예비역 중장 출신 이영하 시인의 ‘부활절 아침,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 는 단순한 서정시를 넘어, 현대 세계의 폭력성과 인간 내면의 윤리를 동시에 호출하는 ‘기도형 서사시’로 읽힌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분명한 신학적·상징적 지점을 설정한다. ‘부활절’은 기독교 전통에서 죽음을 넘어 생명이 회복되는 사건을 의미한다.
시인은 이 상징을 개인의 구원이 아닌 세계적 차원의 평화 회복으로 확장한다. 이는 종교적 언어를 빌려 현실 정치와 국제 질서를 성찰하는 방식으로, 그의 군인·외교관 경력이 자연스럽게 문학으로 전이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적인 서정의 흐름이 아니라, 기도문 구조가 시의 형식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주님!”의 반복, 청원형 문장 (“~하게 하소서”) 결말의 “아멘”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시를 하나의 실천적 행위로 전환시킨다. 즉, 이 작품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언어적 의식(ritual)으로 기능한다.
시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이자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는 지역으로, 시인에게는 곧 현대 문명의 욕망이 집중된 상징적 장소다. “호르무즈의 파도는 밤새 울고 있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파도는 자연을 넘어 역사의 증인으로 기능한다. 바다는 인간의 폭력과 탐욕을 고발하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존재로 제시된다.
이 시는 강한 대비를 통해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총성 ↔ 새의 노래, 폭발 ↔ 맑은 하늘, 미움 ↔ 사랑, 전쟁 ↔ 평화” 이러한 대비는 단순한 미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선택해야 할 윤리적 갈림길을 제시한다. 특히 “한 사람의 결단이 아니라 모든 이의 양심”이라는 구절은, 문제 해결의 주체를 특정 권력에서 보편적 인간으로 확장시킨다.
이영하의 시 세계에서 주목할 점은 ‘힘의 언어’에서 ‘기도의 언어’로의 이동이다. 군인은 명령과 결단의 세계에 속하지만, 이 시에서 화자는 무릎을 꿇는다. 이는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인식이다. '과거,힘으로 지키는 평화, 현재,양심으로 지향하는 평화' 이 전환은 단순한 개인적 변화가 아니라, 현대 문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은유적 제안으로 읽힌다.
시의 마지막은 기도로 닫힌다. “호르무즈의 파도도 더 이상 울지 않고…” 이 구절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고통의 세계가 치유될 수 있다는 신념의 선언이다. 특히 “아이들의 웃음”,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같은 표현은 추상적 평화를 넘어 구체적 인간의 삶으로 회귀하는 평화를 지향한다.
이 시는 전쟁을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과연 평화를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부활절 아침,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는 종교적 언어를 빌려 쓰인 時 이지만, 그 본질은 신앙을 넘어 선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을 향한 호소이자, 세계를 향한 윤리적 선언문이다. “이 시는 전쟁의 시대에 던져진 기도이자, 인간 양심을 향한 마지막 질문으로 해석된다”
평론=(내외매일뉴스/내외매일신문 편집국장 방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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