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광장마음을 채우는 따뜻한 문장과 깊은 사유가 머무는 공간입니다.

■ 정성수 文學 散策■ 「제36회」···우아동 골목

  • AD 내외매일뉴스
  • 조회 65
  • 2026.10.30 20:18
▲ 정성수 원로 작가
 
 
 
우아동 골목
 
 
(시인 정성수-중견 작가)
 
 
길을 잃은 사람들 길을 찾아서 휘청이는 우아동 골목
한 잔 걸친 김 씨가
무시로 점멸하는 네온 아래 딸꾹질을 하면서
주머니 속 일당을 계산하고 있는 사이
모텔 간판 롱타임이 윙크를 하며
호객을 하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정지하더니
비너스 가슴을 한 차순이가
꼬리를 감추고 모텔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어요
도대체 저 속에는 누가 살 길래
깨지기 쉬운 찻잔 같은 시간들을 불러들일까
전망 좋은 방에서
핑크빛 시간들이 할딱이는 소리 끌어안고 거칠게 살아갈까
나도 리모델링하면
사과 같은 엉덩이를 받치는 좌대라도 될 수 있을까
무더운 여름 날
넋을 놓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고무친 김 씨가 우아동 골목에서
 
․ 우아동 : 전주시 덕진구 소재
 
 
 
□ 정성수의 한 문장 □
 
골목은 좁아서 좋다. 좁다는 것은 진열대가 적다는 것이다. 골목에는 슈퍼마켓도 휘황찬란한 간판도 고층빌딩도 없다. 구멍가게가 졸고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흘러나오는 저녁 불빛이 따뜻하고 되바라지지 않고 웅숭깊어 좋다.
 
골목은 모든 것을 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길에서 삿대질을 하던 사람도 골목에 들어서면 미안해지고 대로를 달리던 자가용도 골목에 들어서면 조심조심 바퀴를 굴린다. 헬스장에서 울퉁불퉁하게 단련된 어깨도 이웃노인을 만나면 허리를 굽히게 한다. 주인과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는 ‘불도그’도 골목에 들어서면 인상이 환해진다. 골목이 없다면 얼굴이 불콰한 남정네들이 혁대를 풀고 난을 칠 수 없을 것이고 힘이 남아도는 젊은이가 사랑하는 여자를 담장에 밀어 붙일 일도 없을 것이다.
 
골목은 체면을 따지지 않으며 음습하지도 않다. 골목은 바람이 부는 휘파람도 작게 만든다. 골목에 쌓인 눈 더미도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천천히 녹는다. 쓰레기를 담은 비닐봉지와 신문이나 잡지가 한 몸으로 묶여 있고 가끔은 고장 난 라디오나 고물 자전거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골목은 사람냄새가 난다. 사람냄새를 잃은 골목은 골목이 아니다.
 
 
〔mailnews7114@gmail.com〕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싸이공감 네이트온 쪽지 구글 북마크 네이버 북마크